“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인구 23만 4천 명의 브라질 상파울루주 오르톨란지아(Hortolandia)시에 한국인 이름의 도로가 생긴다. 평범한 한국인의 이름이 아니다. 10명 중 7명이 로마 가톨릭 교인인 브라질 사회에서 ‘목사’라는 수식어까지 붙은 도로명이다.
오르톨란지아시는 시의회가 지난달 17일 제랄도코스타카마르고 공공도로 사이에 위치한 길을 ‘루아 박동주 목사(Rua pastor Dong Joo Park)’로 명명하는 내용을 승인했다며 호세 나사레노 제제 고메스 시장 대행 명의로 관보에 게재했다.
이 길에 붙여진 이름, 박동주 목사는 1990년 2월 인천제2교회 부목사로 부임해 9개월 뒤인 11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세계선교회(GMS) 소속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브라질에 도착했다. 이후 31년간 브라질에서 사역하다가 지난 6월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뒤 별세했다. 65세의 나이였다.
지난 26일 서울 동작구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박 목사의 아내 이금숙(63) 선교사는 “남편 이름으로 도로명이 생겼다는 걸 관보를 보고 알았다”는 말과 함께, 남편이 30여 년간 브라질에 닦아놓은 ‘복음의 길’을 풀어냈다.
원래 박 목사가 선교지로 마음에 품은 곳은 아프리카였으나 하나님은 방향을 브라질로 돌렸다. 박 목사 부부는 자녀와 함께 90년 11월 29일 브라질에 도착해 인구 1천 만 명 넘는 남아메리카 최대 도시 상파울루주의 상파울루시 부근 20여 개 위성도시를 선교 사역지로 삼았다. 그리고 빈민가를 찾아 교회를 세웠다.
박 목사의 아들인 형우(37) 씨는 “아버지는 못사는 동네만 찾아다니셨다. 일주일에 한 번씩 살인 사건이 발생할 정도로 험악한 지역이었다”고 했다. 박 목사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지역에 8개 교회를 개척하고 현지인 목회자를 세웠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첫 번째, 두 번째 교회는 한국식 사역을 도입했는데 실패했어요. 세 번째 교회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바닥으로 끌어내리셨어요. 양육하던 사역자가 교인을 전부 데리고 나갔고 매주 300여 명의 성도들이 채우던 예배당엔 6명만 남아 있었어요.”
부부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선교사는 “성도가 늘어나는 게 우리가 잘해서 된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하나님이 알려 주신 것”이라며 “하나님께 엎드려 회개하면서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교회 이름은 CPI(국제장로교공동체)로 바꿨다. 이후 새로 개척한 교회 이름은 CPI에 지역명을 붙여 만들었다. 아픔을 준 교회가 교회 개척의 본부가 된 셈이다.
박 목사는 현지인을 향한 교육에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었다. 상파울루 지역과 아마존 신학교에서 강의와 신학 영성 훈련을 하며 현지인 지도자 양성에도 힘썼다. 실업과 마약·알코올 중독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 회복에도 힘을 쏟았다. 그의 꾸준한 헌신에 지역 주민들은 크게 감동했다. 이번 별세 소식을 듣고는 함께 슬퍼했다고 한다.
형우 씨는 “도로에 아버지 이름이 붙게 됐다는 얘기를 듣고 아버지 선교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박 목사가 양육하고 세운 현지 동역자들도 그의 사역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 선교사는 “저도 그들이 남편의 사역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고 기도해 달라 하면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출처: 국민일보 종합).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태복음 25:21)
하나님, 브라질에 박동주 목사님을 보내사 생명 다해 섬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도로를 다니는 자마다 이 땅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하사 적은 일에 순종하여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자들로 세워주소서. 유가족과 현지 동역자들을 말씀으로 위로해주시고 목사님을 이어 남은 선교 사역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게 하소서.
기도정보제공 : 기도 24·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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